4-1 부활의 사실

오늘은 부활 주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후 이 땅에 40일을 계시며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첫 번째 부활의 사실은 예수님은 죽어서 무덤에 묻혔습니다. 고린도전서 15:4에서 예수님은 무덤에 묻히셨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그리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 묻혔다고 마가복음 15장 43절 이하에서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두 번째 부활의 사실은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사복음서 모두가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막16:5,6, 마28:5,6, 눅24:5,6, 요20:6,7). 고린도전서 15:3-8의 초기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1세기 당시 유대인들과 권력자들은 예수님의 무덤의 위치를 분명히 알고 있었고, 또한 무덤이 비어있었음을 시인하고 있습니다(마28:11-15). 세 번째 부활의 사실은 개인과 그룹이 여러 번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본 경험을 했고, 그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해서 부활한 예수님을 직접 만나 본 사람이 무려 500명이 넘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파하였습니다(요20:10-18, 마28:8-10, 눅24:13-49, 요20:19-30, 마28:16-20, 눅24:50-52, 행1:4-9). 네 번째 부활의 사실은 예수의 제자들은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경험 때문에 그들의 삶이 급격하게 변화되었

3-25 빌라델비아 교회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 3:8). 이것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평가입니다. 보통 교회가 커야 주님의 말씀을 그대도 지켜 행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 안에 은혜와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은혜와 평강은 성령 충만을 통해서 옵니다. 세상은 두 가지 중 하나로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과 인간의 정욕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만, 하나님의 영을 무시하고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은혜와 평강이 충만합니다. 은혜와 평강은 교회에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작은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 작은 능력으로도 크게 영적인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처럼 최소한의 능력을 가지고 대제국 바벨론의 왕과 마주설 수 있도록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세상 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탄에게 굴복하면 자기를 더럽히는 일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봅시다.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는 축복을 누립시다. 이 기둥에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이름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새겨지는 축복을 받읍시

3-18 사데 교회

요한 계시록 2장, 3장에 나오는 교회들 중에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책망을 함께 받는 교회도 있고, 칭찬만 받는 교회도 있고, 책망만 받는 교회도 있습니다. 사데 교회는 책망만 들었던 교회입니다. 사데 교회는 칭찬이 없을뿐더러 그들에게 주어진 말씀은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죽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입니다. 죽었다고 하면 이미 생명이 끝나서 더 이상 소망이 없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 사데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이 마지막 경고처럼 보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도둑같이 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곧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있어서 죄를 멀리하고 주님 닮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죽어 있다면, 죄에 무감각해집니다. 삶이 죄로 뒤덮여도 깨닫지 못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는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가 나옵니다. 육체의 일은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리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 등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은,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육체의 일로 충

3-11 두아디라 교회

두아디라 교회 두아디라 교회는 사업, 사랑, 믿음, 섬김, 인내에 있어서 주님께 인정받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책망 받을 일이 있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에베소 교회와는 달리 진리에 바탕을 둔 신앙이 바로서지 못했습니다. 사는 목적이 돈 벌기 위한 사업이 우선이었고 섬김도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체면과 명분을 앞세운 것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올바른 신앙이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로 인해 믿음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이단은 많은 영혼을 노략질하고 교회의 지도급 사람들까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저버리게 하고 영적인 음행과 육적인 음행도 범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입각하여 아무리 힘들고 부담스러워도 믿음의 정절과 줏대를 지켜 살았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교회를 혼란에 몰아넣고 있는 거짓 예언자들을 물리쳐야 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가 위기에 내몰린 것은 세상적 지식이나 물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거룩하지 않고, 하나님 대신 물질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거룩한 교회입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여야 합니다. 이기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바, 새벽별, 곧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해야 합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는 길 외에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 길이 두아디라 교회가 살 길이었

3-4 빌리 그래함 목사

빌리 그래함 목사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 전도자'인 빌리 그래함 목사님께서 지난 2월 21일 향년 99세로 별세했습니다. 1918년 11월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럿에서 태어난 그래함 목사님은 1940년 플로리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남침례교 목사로 오직 예수를 통한 구원을 한평생 설교하며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로스앤젤레스(LA) 전도대회를 시작으로 평생 185개국에 복음을 전파하며 전 세계 선교에 나서면서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로 활동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한국과의 인연은 중국 파송 미국 의료선교사 딸이자, 빌리 그래함 목사의 아내인 루스 그래함(2007년에 87세로 별세)이 10대 시절 1930년대 동아시아 기독교 성지, 예루살렘으로 불리던 평양 외국인학교에서 몇 년간 공부한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6·25전쟁 중인 1952년 12월15일 부산에서 집회를 열었고, 1956년 서울운동장 집회엔 8만 여명이 모였습니다. 1973년 여의도 광장에서 집회를 시작하며 “한국은 나의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민을 사랑하는 그의 심정을 나타내기도 하셨습니다. 그 집회에 무려 100만 명이 참여하면서 한국교회가 하나 되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가능성과 함께 한국교회가 폭발적 성장을 가져오는 전기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김일성 생존 당시인 1992년과 1994년

2-25 헌신2

헌신2 '보니엠'이라는 그룹이 70년대 말 부른 히트곡이 '바빌론 강가에서'(Rivers of Babylon)인데 성경을 인용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시 137:1,2) 유다 포로들을 사로잡은 자들이 시온의 노래, 곧 여호와의 노래를 청할 때 유다 포로들은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버리고 혹이라도 자기네 손이 그 이방인들을 위해 수금을 연주하거나 자기네 입이 노래를 부른다면 손은 그 재주를 잊어버리고 입은 벙어리가 되기를 저주했습니다. 이는 자기네의 재주와 몸의 지체가 한 부분도 하나님과 무관하게 쓰이지 않기를 간구하는 몸부림이었습니다. 긍정적인 의미로는 자신과 삶, 재능은 오직 여호와의 영광만을 위해 사용되기를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요컨대 완전한 헌신의 소원이 흐르고 있습니다. 완전한 헌신을 하려면 주 예수님이 우리의 입술에서 뿐만 아니라 삶에서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기에 우리의 주인이시오, 우리의 구원자이기에 또한 우리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나 자신도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오직 주님만이 내 삶에서 주인 되게 하셔야 합니다. 어느 것은 주의 일, 어느 것은 세상 일 또는 나의 일로 구분하려 한다면 완전한 헌신이 불가능해집니다.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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