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6-18 안식일/주일

스위스의 해글러 박사는 산소량에 대한 실험을 통해 안식일이 사람에게 꼭 필요한 날이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밤에 휴식을 취하면서 얻는 산소의 양은 낮에 일하면서 잃는 산소의 양보다 적습니다. 그런데 주일에 안식하며 얻는 산소의 양이 평일에 우리가 잃은 것을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어 남은 엿새 동안 많은 양의 일을 해도 피곤치 않고 지치지가 않습니다.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 때 일주일을 8일로 하자 생산량이 30% 감소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다시 7일로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것은 그대로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쉬신 마지막 날로서(출애굽기 20장),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은혜를 기뻐하고 예배하는 날로 정하신 날입니다(신명기 5장). 하지만 신약 시대로 오면 이 날은 예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주일(주님의 날, Lord’s Day)로 바뀝니다(마태복음 28:1, 고린도전서 16:2). 안식일은 한 주의 마지막 날이지만, 주일(일요일)은 한 주의 첫 날입니다. 안식일은 한 주간 동안 열심히 일하고 쉼으로써 하나님께 예배하는데 초점이 있다면, 주일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한 주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삶을 살 것을 결단하고 기대함으로 예배하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오늘은 한 주간의 마지막 날 주말이 아니라 한 주

9-9-18 깊은 데로 가서

예수님을 만나 베드로가 되기 전, 시몬의 모습으로 살 때 시몬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시몬이 밤을 맞도록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던지기를 거듭하였으나 그날따라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였습니다. 아침이 되어 빈 그물을 손질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의 배를 빌려 호숫가에 앉은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말씀을 마치고 예수가 베드로에게 다가가 그에게 명령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 물론 이 말은 고기 잡는 그물을 호수 깊은 데로 가서 던지라는 말이지만, 이 말을 넓게 적용하면 여기서 ‘깊은 데’는 베드로의 내면과 영혼 깊은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는 깊이의 세계인데 지금 마지막 시대를 사는 크리스천들의 문제점 중의 하나가 깊이의 차원이 약하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깊지 못하고 고민이 깊지 못합니다. 예배가 깊지 못하고 기도가 깊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진지한 마음으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깊은 영성의 본질입니다. 우리의 내면 깊은 곳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얕고 가벼움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억지웃음을 지으며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바로 이 시대를 향한 예수

09-02-18 광야에서

누가복음 4장에 나오는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마귀에게 어떤 시험을 받았는지에 집중하느라 가끔은 시험 받으신 그곳이 광야임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마귀의 시험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굳이 광야라는 공간으로 이끄셨을까요? 이스라엘의 광야는 결코 만만한 장소가 아닙니다. 마귀가 아니어도 사나운 짐승들로 인해 항상 생명의 위협을 받는 곳, 환경이 척박하여 사람 살기가 어려운 곳, 처절한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가셨다는 표현은 당시 로마의 박해로 인해 자기들이 살던 곳에서 사방으로 흩어져 광야의 삶을 살던 성도들에게 성령께서 예수님을 그들이 있는 광야로 이끄셨음을 읽은 그들에게 누가복음은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광야에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이제 광야는 더 이상 시험의 장소가 아닌 주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 이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홀로 광야에 선 것이 아닙니다. 홀로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광야는 주님과 함께 가까이 있으며 주님과 교제하는 곳이 되었고 안전한 곳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이끄셨듯이 여러분의 광야 같은 삶의 자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광야와 같은 삶이

08-26-18 침례 요한의 요단강

모든 사람에게는 적어도 세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 보이는 모습, 가족과 친한 친구를 포함해서 가까운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 그리고 자기 자신만 아는 모습이 있습니다. 고백한다는 것은 이 세 가지 모습을 다 하나님께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 인류는 하나님으로부터 숨으려고 애써왔지만 에덴동산의 창조주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며 우리를 당신의 동산으로 부르시는 일을 계속 하십니다.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할 새로운 시작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요단강에서 진실을 말하는 순간 시작됩니다. 진실을 고하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과 다시금 하나가 되게 해줍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분의 용서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고백하지 않고도 우리가 다시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그 사람과 하나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가 되려면 정직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실을 말씀 드리고 우리의 현재의 모습과 과거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때, 우리는 용서와 능력을 베푸는 요단강, 곧 우리를 깨끗이 씻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침례 요한의 요단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과 영생을 얻은 사람들이지만, 매일 자신의 요단강 앞에 서서 하나님 앞에 진실을 고백하며 깨끗함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08-19-18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은 사가랴의 집에 아들(침례 요한)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능력과 한계를 뛰어 넘는 기쁨의 선물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사가랴는 기대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모두에게 기쁨의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선물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가랴는 그 이유를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눅1:78)고 말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긍휼’은 하나님의 속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주실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긍휼은 단순히 불쌍히 여기는 동정이 아니라 사랑을 말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지만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며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것이 긍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선물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선물, 가장 필요하고 가장 중요한 선물을 받았고 앞으로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목자가 사랑으로 양을 이끌며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긍휼히 여기시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며

08-12-18 광복절

이번 주 수요일은 73주년을 맞이하는 광복절입니다. 광복절(光復節)은 한반도가 일본 제국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로, 매년 8월 15일에 기념하고 있습니다. ‘광복’은 “빛(光)을 되찾음(復)”, 즉, 주권을 되찾았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우리 민족이 일본에 의해 1910년 8월 29일 합방된 후 36년간의 생활은 너무도 굴욕적이고 비참하였습니다. 우리의 기본권을 박탈당하고 강제노동과 징병에 시달리며, 우리나라 말과 한글까지도 쓰지 못하도록 탄압을 당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름과 성도 일본식으로 고치게 하였고, 전쟁물자와 식량의 공급을 위한 각종 약탈을 감행해 우리 민족을 괴롭혔습니다. 특히 일제 말기에는 신사참배까지도 강요당하여 기독교가 핍박을 받았습니다. 드디어 우리 민족이 해방된 날, 너무도 많은 것을 잃었던 것을 다시 찾은 그 날, 자유를 얻은 기쁨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성경에서도 최대 주제는 자유입니다. 그리스도는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시면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고 선언하셨습니다. 죄의 힘은 이스라엘을 지배했던 애굽이나 바벨론, 로마보다 더욱 강력합니다. 죄의 종은 영원히 지옥의 어두움에 던져지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흑인을 해방시킨 링컨이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모세와 같은 해방자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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