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19 상석과 말석
우리나라 사람들은 윗자리, ‘상석(上席)’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데 도대체 상석은 어디일까요? 일반적으로는 출입문에서 가장 먼 자리가 상석이고, 긴 탁자의 경우 오른쪽 제일 앞자리가 상석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4장 7절부터 11절을 보면 주님은 우리가 어떤 잔치나 모임 자리에 초청 받아 갔을 때 상석(높은 자리)과 말석(끝자리)의 문제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혼인잔치에 초청 받아 갔을 때 상석과 말석이 비어 있으면 상석에 앉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가 자기보다 더 높은 분, 귀한 사람이 왔을 때 말석으로 밀려나면 얼마나 창피하냐는 것입니다. 몇 년 전 우리 교단 총회 주최 세미나에서 한 선배 목사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목사, 그 아무개 목사 있잖아? 그 친구 안 되겠더구먼.” “왜요?” “아니, 여러 목사님들이 함께 밴(van)을 타고 가는데 자기가 먼저 밴에 쏙 타서 맨 앞자리 차지하고 가잖아. 그
1-20-19 좁은 문, 좁은 길
어느 날, 공처가인 사장이 회사에서 사원들을 모아 놓고 남들도 자기처럼 공처가인가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어떤 결정을 할 때 아내 말을 잘 듣는 사람은 오른쪽으로 가 앉으시오.” 그러자 사원 전원이 다 오른쪽으로 몰려가 앉았는데, 그 중에 단 한 명만 왼쪽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때 사장이 왼쪽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거기 혼자 당당하게 있는 모습이 부럽네요. 어떻게 아내를 컨트롤할 수 있죠?”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그게 아니라, 오늘 아침 출근할 때 제 아내가 사람이 많이 모인 데는 가지 말라고 해서요." 예수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도 나도 몰려가는 넓은 문으로는 들어가지 말라. 그것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이요, 파멸의 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문은 비록 찾는 자가 적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요 길이다.” 멸망으로 가는 문은 넓고, 이어지는 넓은 길은 평탄해 사람들이 가기 쉬운 길입
1-13-19 겨자씨 비전
겨자씨는 팔레스타인의 모든 씨 중에서 가장 작은 씨앗이라고 합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은 것을 비유할 때 사용하는 상징물로, 쌀눈 크기 정도로 아주 작지만 성장하면 새들이 와서 깃들일 정도로 큰 나무가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겨자씨만큼의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큰 약속은 가장 작은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그 속에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생명력을 가졌습니다. 겨자씨 비전을 품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페르시아의 황제 다리우스가 유럽을 정복할 때 알렉산더 대왕과 대결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에 앞서 다리우스는 선전 포고의 의미로 참깨 자루를 보냈고, 알렉산더는 봉투에 작은 겨자씨 하나를 넣어 보냈습니다. ‘우리 군대는 셀 수 없이 많으니 항복하라’는 뜻의 다리우스 말에, 알렉산더는 ‘우리는 비록 작지만 생명력 있는 군대’라고 응답한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용기 있는 알렉산더가 승리했습니다.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01-06-19 새해 마음
새해 마음 -이해인- 늘 나에게 있는 새로운 마음이지만 오늘은 이 마음에 색동옷 입혀 새해 마음이라 이름 부쳐줍니다. 일년 내내 이웃에게 복을 빌어주며 행복을 손짓하는 따듯한 마음, 작은 일에도 고마워하며 감동의 웃음을 꽃으로 피워내는 밝은 마음, 내가 바라는 것을 남에게 먼저 배려하고 먼저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 다시 오는 시간들을 잘 관리하고 정성을 다하는 성실한 마음, 실수하고 넘어져도 언제나 희망으로 다시 시작 할 준비가 되어있는 겸손한 마음, 곱게 설빔 차려입은 나의 마음과 어깨동무하고 새롭게 길을 가니 새롭게 행복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