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1-19 부활절을 맞아

부활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참된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 아닌지는 그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있는지, 믿지 않고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34년 전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부부는 같은 배를 타고 인천 제물포 항에 도착했습니다. 그 당시 미국 교회 입장에서는 한국의 천주교박해를 기억하기에 아직 한국은 위험하고 선교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땅으로 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먼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아직 경계하고 의심하고 있는 한국 땅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알지 못한 채 오직 부활의 주님만 의지하고 이 땅에 왔습니다. 그리고 불확실함과 두려움 가운데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디디며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이 날 사망의 빗장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나라 백성들이 얽매여 있는 굴레를 끊으사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과 자유를 허락해 주옵소서.” 이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선교가 그로부터 100년이 훌쩍 지난 후 무려 1000만의 그리스도인 있는 나라, 세계 제2의 선교사 파송국이 되었습니다. 부활절 아침을 맞아

04-14-19 고난주간을 맞아

오늘은 종려주일(Palm Sunday)로 지킵니다. 종려주일은 사순절의 마지막 주일로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사용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21:9, 막11:10)라고 외쳤습니다. 호산나(Hosanna)의 뜻은 “이제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기도문인데(시118:25), 당시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구주로 받아들이기보다 그들의 왕이 되어 정치적 해방과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 줄 것으로 잘못 기대하면서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군중들의 환호에 연연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호산나’ 외치는 소리가 머지않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소리로 바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은 정복자가 타는 말 대신 보잘 것 없는 나귀를 타셨습니다. 이번 고난주간을 맞아 우리는 주님께서 보여주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과 기대에 못 미칠 때 환영과 환호가 분노와 배신으로 변한 예루살렘 군중들처럼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순절의 마지막 주인 고난주간을 이제 시작하게 됩니다

04-07-19 무익한 종

누가복음 17장에서 '연약한 사람을 실족케 했다면 차라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라는 주님의 경고가 ‘형제가 죄를 범하면 경고하고, 회개하면 용서해 받아주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살아갈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곧 이어 ‘무익한 종’에 대한 말씀에서는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종에게 ‘고생했네. 어서 와서 편히 쉬게나’라고 말할 주인은 없고, 오히려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시중들고, 그 후에야 네 먹을 것을 먹어라’라고 말하는 주인만 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나는 주인이고, 너는 종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주인’의 자리에서 ‘종’의 역할을 남들에게 기대합니다. 그러니 감사나 격려의 좋은 말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들어와,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한 자에게 감사와 격려는 못해줄 망정, 오히려 질책의 말을 하니 그는 실족하게 되고, 그를 실족하게 만든 상대는 죄를 범한 자가 되어 뽕나무가 아닌, 연자 맷돌이 매어져 바다에 던져지는 일이 벌어집니다. 함께 살아감이 서로에게 상처와 실족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종’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것도 ‘무익한 종’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십자가를 앞에 두고 식사 시중꾼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예수님에게서 우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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