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1-19 노동절
오늘은 노동절 연휴가 있는 주일이라 그런지 여행을 떠난 성도님들의 이름이 주보에 평소보다 많이 올라와 있네요. 전 세계가 지키는 노동절(Labor day)은 메이데이(May day)라고 해서 5월 1일인데 유래는 1884년 5월 1일 미국의 방직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한 이후 1886년 5월 1일 시카고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교육’을 부르짖으며 총파업을 전개한 것에서 노동절이 시작됐습니다. 노동절의 역사적 배경이 된 미국에서는 메이 데이가 사회주의적 냄새가 난다고해서 1894년 이후 매년 9월 첫 월요일을 노동절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힘들어 하지만 직장이 있다는 그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가정주부들은 내가 일할 수 있는 가정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하고 보람된 일인지요? 올해도 우리가 노동절을 지내며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첫째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수고를 통해
08-25-19 8월 마지막 주일을 맞아
아직도 낮에는 덥지만 달력상으로는 무더웠던 여름이 끝나가고 어느덧 8월 마지막 주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름방학도 끝나고 우리 자녀들이 새 학기를 시작했는데 우리가 하는 기대와 걱정 중의 하나는 좋은 믿음의 선생님을 만나서 학교생활을 행복하게 잘 보내게 될 지와, 좋은 믿음의 친구들을 만나 함께 믿음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함께 꿈꾸며 서로 선한 영향력 속에 살아가는 기쁨을 경험하게 될 지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위한 이런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이번 새 학기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아가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한없는 사랑과 은혜가 늘 머물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도자로서 새로 출발하는 여호수아에게 여호수아 1장7절에서부터 9절까지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7]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
08-18-19 총기사건을 보며
이 달 초 2건의 대형 총기난사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8월 3일 텍사스 주 엘패소의 월마트에서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20명이 사망하고 26명이 부상한 가운데, 4일 새벽에는 오하오주 대이톤(Dayton)의 도심에서도 총기난사가 발생해 용의자를 포함해 10명이 숨지고 최소 26명이 부상했습니다. 불과 13시간 차이로 발생한 연쇄 총기난사로 무려 30명이 죽고 최소 52명이 다치는 참사가 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안전한 곳이 없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거나 세상에 남겨질 때 자녀에 대해서만 아니라 사랑하는 배우자와 가족들, 그리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에 대해서 후회할 만한 순간을 만들면 안 되겠다는 것을 다시금 절실히 깨닫습니다. 혹시라도 어떤 사람과의 마지막 만남이 서로 얼굴을 붉히거나 마음이 상할 만한 것이었다면, 가능한 빠른
08-11-19 예수님의 권위
직장에 다니는 아버지가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중학생 아들이 본체만체하며 인사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속이 상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아! 이 녀석아 아빠를 보면 인사를 해야지” 대꾸하는 아들의 말이 걸작입니다. “아빠! 먼저 본 사람이 인사 좀 하면 안돼요. 왜 꼭 내가 먼저 인사해야 하나요?” 권위가 몰락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물론 없는 권위를 주장하거나 부여된 권위를 뛰어넘어 그 이상의 권위를 내세우거나 행사하려는 권위주의는 마땅히 배격되어야 하지만 권위는 회복되어야 합니다. 권위는 조직체를 세우는 뼈대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권위가 무너지면 공동체도 함께 무너집니다. 부모의 권위가 무시된 가정, 스승의 권위가 무너진 학교, 대통령의 권위가 무너진 국가가 제대로 설 수 없음은 기둥이 무너진 건물이 제대로 설 수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예수님의 권위가 무너진다면
08-04-19 주님의 울음
지금도 사람들은 자기의 꿈을 실현 시켜 줄 왕을 찾아 헤맵니다. 자기의 한을 풀어 줄 왕, 자기 인생을 역전시켜 줄 왕, 자기가 말만 하면 다 들어줄, 자기가 필요한 전지전능한 왕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를 팔아넘기기도 하고, 군중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롱하며 침 뱉기도 하며, 제사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저주하기도 하고, 로마 군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실제로 못 박기도 하고, 빌라도가 그랬던 것처럼 난 상관없다고 얼굴을 돌려 버리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향해 우십니다. 영생이 아닌 자기만족을 위해, 십자가가 아닌 자기 배부름을 위해, 죄에서부터 구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이 올라가려고 또 다른 죄를 짓는 그런 헛된 왕을 바라는 자들을 향해 우시는 것입니다. 가끔 내 기도가 잘못 될 때마다, 내 마음이 소망이 참된 왕이신 주님이 아닌 헛된 세상의 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