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9-19 말세의 징조를 보면서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사람들의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 지구 온난화 현상도 말세의 징조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올해 불볕더위로 2만 명 이상이 죽었고, 캘리포니아에서도 연일 산불이 발생하여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온난화는 곧 물 부족과 연결되어 식량이 감소하고, 농작물에 병충해가 극심해지고, 이는 식량 부족으로 굶어죽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대로 20년이 지나면 100만 여종의 생물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고 하니 앞날이 걱정됩니다. 세계 곳곳 137개국에서 지난 20일 청소년을 중심으로 400만 명 이상이 거리로 나와 지구온난화를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시위를 펼쳤습니다. 기후변동 대책을 촉구하는 전 세계 어린이와 학생들이 이날 학교를 떠나 거리에서 서둘러 지구를 온난화에서 구하라고 일제히 외쳤습니다. 교회에서 ‘말세’라는 단어의 의미는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된 세상 끝 날이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되기에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를 말세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도 제자들의 관심은 말세의 징조에 대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묻고 얻은 답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말세의 징조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사람들도 서로 싸우며 죽이고,

09-22-19 하나님께 보다 많이 드리려면

오늘 본문 누가복음 21장에서 예수님은 성전에서 헌금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십니다. 부자들은 자기가 부자인 것을 자랑하기 위해 두둑한 돈 주머니를 높이 들고 돈이 많이 있음을 보여주고 그 속에서 한 움큼 집어 연보궤에 넣습니다. 그런데 그 틈새에서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금화도 은화도 아닌 동전으로 단위가 가장 낮은 돈 두 렙돈을 참으로 죄송한 마음으로 넣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가난한 과부가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다(4절)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말씀하신 것을 보아 이 과부는 지금까지 살아오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믿음이 있었고, 이제부터는 아무것도 없지만 굶어 죽을지에 대한 걱정도 이 과부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책임져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남은 생활비 모두를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선물을 주고받을 때도 그 선물이 얼마나 비싸고 싼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선물 속에 관심과 사랑이 얼마만큼 스며들어 있는지가 중요한 것처럼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도 마찬가지임을 알게 됩니다. 돈 많은 사람이 그 많은 것 중에 일부를 드린 것과,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자기 가진 것의 전부를 드린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 과부의 믿음의 정성이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가장 많이 드린 것으로 평가된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인색하고 자신에게는

09-15-19 나는 종교인인가? 신앙인인가?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습관적으로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 당시의 사두개인처럼 신앙인보다 점점 종교인으로 변질되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내가 신앙인인지, 종교인인지를 아래의 9가지 글을 읽어 보시면서 한번 자신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기준이 남을 정죄하는 기준이 아닌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진실 되게 한번 되돌아보면서 우리 함께 하나님을 향한 은혜의 목마름이 더 커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1. 신앙인은 성령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지만, 종교인은 예배를 방청할 뿐이다. 2. 신앙인은 자신을 회개하지만, 종교인은 다른 사람을 비판한다. 3. 신앙인은 신앙 인격이 깊어지지만, 종교인은 자기 의가 더욱 높아질 뿐이다. 4. 신앙인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지만, 종교인은 자신의 뜻을 추구한다. 5. 신앙인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만, 종교인은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6. 신앙인은 자신의 연약함을 자랑하지만, 종교인은 자신의 강함을 자랑한다. 7. 신앙인은 예수님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지만, 종교인은 예수님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8. 신앙인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만, 종교인은 자신의 영광이 드러난다. 9. 성령 충만한 기름부음이 있는 신앙인은 사람을 치유하지만, 자기 의로 옷 입은 종교인은 사람을 정죄한다.(A.W 토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

09-08-19 우리의 부활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은하철도 999’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나왔습니다. 주인공 ‘철이’라는 어린이가 신비의 여인 ‘메텔’과 은하초특급 999에 탑승하여 무료로 기계의 몸을 준다는 안드로메다라는 별을 떠나면서 일어난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만화영화인데, 그 영화에서조차 인간의 영원한 소망이 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인간은 기계에 몸을 얹을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입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무덤에서의 부활은 복음을 떠받치고 있는 두 기둥입니다. 죽음 없이 부활 없고, 십자가 없이 영광 없습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십자가에서의 희생은 미완성이었을 것입니다. 천주교회는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고난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래서 천주교회에서 사용하는 십자가에는 예수님의 시신이 걸려 있습니다. 그것을 ‘십자고상’(十字苦像)이라고 부릅니다. 십자가에 달려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 고난을 묵상하라는 뜻입니다. 종교 개혁 이후에 개신교회는 십자고상을 버렸습니다. 첫째는 우상숭배로 이끌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예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지고 나면 그것은 신성하게 취급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그 선을 넘어서기가 매우 쉽습니다. 둘째는 우리의 구원을 완성한 것은 부활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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