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20 하나님의 뜻을 알고 선하게 쓰임 받으려면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길은 우리의 것과 확실히 다르고, 우리의 것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고 시인할 때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사55:8,9).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선하게 쓰임 받으려면 1. 먼저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는 우리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 시작되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말씀은 씨앗이 되어 나의 삶에 새 일을 시작하게 합니다. 2. 말씀을 곰곰이 묵상해야 합니다. 아무리 잘 뿌려진 씨앗도 그대로 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땅 속으로 심겨져야 하고 적당한 수분과 온도 등 성장 조건이 충족되어져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바로 말씀 묵상의 과정입니다. 말씀을 되씹고 곱씹을 때마다 더 심오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됩니다. 3. 주변을 향해 오감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이 말은 말씀을 묵상하고 난 후에는 반드시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라는 말입니다. 환경을 살피고, 사람을 만나게 되는 상황이나 들리는 말이나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냥 흘려 보내지 마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은 그 말씀과 연관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4. 믿고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있어서 두 부류의 실패자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믿지 않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믿는데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믿고 행

1-19-20 설날

2020년 설날은 1월 25일 이번 주 토요일입니다. 설이란 새해의 첫 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닙니다. 음력 1월 1일(구정)인 설날이 양력 1월 1일(신정)에게 공식적인 ‘설날’을 내주게 된 것은 을미개혁이 이뤄진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태양력을 사용하면서 1896년 1월 1일을 ‘설날’로 지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여전히 음력 1월 1일을 설날로 여기고, 조상에 제사를 드리고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렸습니다. 우리나라를 강점한 일본은 태양력을 채택한 1873년 이후 설날은 양력 1월 1일입니다. 일본에서 음력설은 아무 날도 아닙니다. 그래서 한일합방이 되자 일본 총독부는 음력설 쇠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음력 설날에 각 관청과 학교의 조퇴를 엄금하거나 흰 옷을 입고 세배 다니는 사람에게 검은 물이 든 물총을 쏘아 얼룩지게 하는 등 갖가지 박해를 가했습니다. 이렇게 일제가 강요까지 하니, 서민들 입장에서는 신정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정을 ‘왜놈 설’이라고까지 부르며 저항하고, 음력설을 쇱니다. 광복 이후에도 정부는 1949년 공식적으로 양력설만을 공휴일로 지정합니다. 당시 정부가 내건 명목은 ‘이중과세’, 즉 양력과 음력으로 두 번의 설을 쇠는 것을 방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음력설을 쇠려고 했고, 고향으로 가는 길은 인산인해를 이룸

1-12-20 작심삼일이 안 되려면

새해 2주가 벌써 지났습니다. 새해결심들이 아직도 잘 지켜지고 있나요? 아니면 작심삼일로 끝났는지요? 어느 신문사에서 사람들이 주로 하는 새해결심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는데 첫째는 ‘자기계발’(29.7%), 둘째는 ‘규칙적인 운동’(24.1%), 셋째는 ‘다이어트’(21.8%), 넷째는 ‘금연이나 금주’(11.0%), 다섯째는 ‘돈 절약하기’(9.8%)였습니다. 그리고 새해결심을 실행함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 첫째가 ‘의지부족’(55.6%), 둘째는 ‘게으름’(18.8%), 셋째는 ‘시간부족’(10.6%), 넷째는 ‘경제적 문제’ (8.2%), 다섯째는 ‘주위 분위기’(4.0%) 등이 꼽혔습니다. 결국 새해결심을 실행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연초에 어떤 결심을 할까요? 온전한 주일성수, 온전한 십일조하기, 성경을 최소한 일독 이상하기, 1명 이상 전도하기, 새벽기도 실천, 성질 죽이기, 베풀기, QT, TV 시청시간 줄이기, 아직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한 분들은 금주 금연하기, 책읽기 등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위한 결심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바보는 항상 결심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매일 결심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빗대어 한 말입니다. 2020년을 맞이해 새해결심을 하셨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실행입니다. 새해결심에 대한 실행은 우리 힘과 의지만으로

1-05-20 새해를 맞아

2020년 경자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란 어제와 다른 해가 떠오르기 때문에 새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새해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2019년의 똑같은 해가 그대로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새해라고 말하지만 내 가족, 내 주변 환경은 변한 것이 없이 그대로 나를 맞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진정한 새해를 맞이하려면 내가 바꿀 수 있는 내 마음이 새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했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말과 표정, 행동, 인생이 달라지기에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올 한해 주어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새롭게 기도로 다짐하고, 각오하고, 생각을 가지면 새로워진 우리의 복된 인생이 열려집니다. 환경은 그대로지만, 우리의 인생은 전과 다른 삶, 새로운 마음의 그릇에 하늘 축복이 가득 담긴 삶이 열려집니다. 신앙인들은 올 한해 어떤 환경이 주어지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많은 사람들이 비관적으로 미래를 예측할 때 "[8]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9]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민 14:8,9)고 신앙적으로 확고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12-29-19 송년주일을 맞아

이번 주간은 2019년 한해를 보내고, 2020년 새해를 준비하는 주간입니다. 올해의 달력을 치우고, 새해 달력을 걸어야 하는 주간, 2019년의 다이어리를 잘 보관하고, 2020년의 다이어리를 정리하는 한 주간입니다. 2019년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송구영신예배가 있는 주간입니다. 나름대로 지나 보낸 한해를 잘 정리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잘 정리해야 할 한 주간입니다. 그냥 변함없이 똑같은 한 주간이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의미 있게 보내야 하는 한 주간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연말연시를 어떻게 보내십니까? 일본 사람들은 연말연시에 대청소를 한다고 합니다. 또 소바(메밀국수)를 많이 먹는다고 합니다. 액운은 쉽게 끊고 새해에는 길게 장수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또 제야의 종을 칩니다. 불교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타종은 108번뇌를 상징하면서 108번 칩니다. 한국에서도 매년 말일에 종로 보신각에서 33번 타종을 하는데, 그것 역시 불교의 하늘 세상인 33천에 닿으려는 소망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연말연시가 되면 망년회(忘年會)를 합니다. 연말에 나이를 잊고, 세월을 잊으며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고자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달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연말연시를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시간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가장 먼저 우리의 믿음을 재정비하는 시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12-22-19 구유 앞에서

구유 앞에서 -이해인- 하늘에서 땅까지 참으로 먼 길을 걸어 내려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엄청난 거리를 사랑으로 좁히러 오셨습니다 예수 아기시여 천 년이 지나고 또 천년이 지나도록 당신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오시건만 당신을 외롭게 만든 건 정작 우리가 아니었습니까 누우실 자리 하나 마련 못한 건 바로 우리가 아니었습니까 아아, 주 예수 그리스도 엠마누엘이여 사랑이신 당신 앞에 천지가 잠을 깨는 밤 당신을 닮고 싶은 영혼들이 피리처럼 떨려오는 아름다운 밤이여

12-15-19 주님을 가까이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가까이 해서 좋은 것이 있는가 하면 가까이 해서 해로운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해야 할 것이 멀어지고 있거나, 반대로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까이 하고 있다면 속히 돌이키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용기입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우화 가운데 ‘호저(고슴도치) 딜레마’ 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전신에 가시 같은 털이 있는 호저들은 너무 가까이 가면 상처를 받습니다. 서로를 가시 같은 털로 찌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으면 추위에 견디기 힘듭니다. 그래서 상처를 주지 않고 또 따뜻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가까이 지내면서도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찔리지 않고 또 추워도 이길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에게까지도 이런 거리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자기의 좌와 허물이 드러날까 봐 꺼려하고 하나님과 멀어지면 무슨 벌을 받을까 두려워 적당히 믿으려고 합니다. 베드로 같은 수제자가 왜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나요? 예수님을 가까이 따라가지 않고 멀찍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와 주님과의 거리를 호시 탐탐 노려보고 있다가 조금만 거리가 생기면 여지없이 파고 들어와서 우리 신앙을 파괴하고 마음을 우리 영혼을 흔들어대는 것입니다. 양이 목자에게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양은 이리와 늑대의 밥이 될 위험도가 높아집니다. 유일한 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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