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6-20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인생을 살다 보면 세 종류의 인생을 만납니다. 탓하는 사람, 변명하는 사람,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베데스다 못에서 예수님과 38년 된 병자의 대화입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요 5:6,7). 그는 남만 탓하고 변명했습니다. 첫째, 탓하는 사람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변호사가 피고를 병자라 변호하면, 판사가 선처하는 세상입니다. 환자는 좋은 의사를 만나려 하지만, 의사도 좋은 환자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서로 책임은 전가하고, 이익만 보려 합니다. 둘째, 변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와는 자신이 죄를 범한 것은 뱀 때문이라 변명했습니다. 찰스 다윈은 인간을 진화의 희생자로, 칼 마르크스는 인간을 환경의 희생자로, 프로이드는 인간을 예정된 조건의 희생자라 말하며 변명했습니다. “변명에 능숙하면 어떤 것에도 능숙치 못하다”라고 벤자민 프랭클린은 말합니다. “실패의 99%는 변명하는 자들의 것이다”라고 조지 워싱턴은 말합니다. 셋째, 책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운명론, 숙명론을 극복하는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바로 공주의 아들보다 이스라엘과 함께 고난 받기를 선택했습니다(히 11:24-25).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롬 8:28), 시험 당할 때 피할 길과 감당할 능력을 주시며(고전 1

7-19-20 문제가 있다면

우리 인생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아무 때나 찾아옵니다. 코로나 사태처럼 예측할 수 없는 문제들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계속해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십니다. 요2장에서는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모자란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요3장에서는 영생의 문제로 고민하는 니고데모를 만나셨습니다. 요4장에서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요4장 후반부에서는 아들이 병들어 거의 죽게 된 문제를 가진 왕의 신하를 만나고 계십니다. 그가 만나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문제를 기적을 창조하는 재료로 삼으려면 기도하며, 작정하며, 금식하며, 예수님과 함께 문제를 보면 문제가 작아집니다, 문제의 해결책이 보입니다. 그 해결책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4장 50절에서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믿고 갔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의심을 다 내어 버렸습니다. 아이가 죽기 전에 가야 한다는 생각도, 가서 손을 얹고 기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버렸습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이 말씀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자기가 생각했던 방식을 버리고 주님의 방식을 따랐습니다. "하나님, 이 문제는 이렇게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 생각을 버리십시오. 그 대신에 "하나님. 이 문

7-12-20 가나의 혼인 잔치

가나의 혼인잔치를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포도주 이적을 통해 드러난 것은 예수님의 신성이었습니다. 주님은 자연을 지배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즉,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첫 이적으로 포도주가 모자란 혼인 잔치에 물로 새 포도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질 좋은 포도주를 먹게 된 손님들은 행복해졌고 잔치 분위기도 살아났습니다. 마리아도 만족을 했으며 신랑 신부도 결혼식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능력의 비밀을 알았고, 함께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표적을 보며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주인공인 신랑 신부를 비롯하여 연회장과 손님들, 하인들과 마리아까지, 거기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해졌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그들의 결혼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게 됩니다. 결혼 관계 사이에 예수님이 반드시 계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남자와 여자가 결혼할 때 남자의 옛 자아와 여자의 옛 자아가 만나게 되는데, 서로 다른 가정 배경과 생활 방식, 남성과 여성의 본능 차이와 천성적인 기질의 간격을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을 만났을 때 그 문제를 가지고 찾아가야 할 대상이 바로 주님이라는 사실을 가나의 혼인 잔치는 보여줍니다. 물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해결해

7-5-20 아브라함의 믿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믿음의 큰사람입니다. 아브라함에게서 믿음은 단순한 고백을 넘어 순종하고 행동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는 살던 자리를 고수하며 하나님 믿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순종해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아버지 품을 떠났고, 하나님의 복을 얻기 위해 아버지의 유업도 포기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떠난 길이라도 인생의 어려움은 계속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가뭄이 들어 애굽으로 내려가야 했고, 자기가 살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했다가 아내를 빼앗길 뻔 했으며, 조카 롯과 갈등이 생겨 결별해야 했고, 아내 사라를 통하여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으나 아내의 말을 더 신뢰하여 아내의 몸종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얻은 게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저 버린 뒤에는 13년이라는 영적 침체를 겪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위대한 믿음, 바위 같은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난을 통해 믿음이 더 견고해 지고, 바랄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기도하고, 노력하고, 기다렸더니 하나님의 역사를 본 점진적인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을 보여준 첫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려면 버리고 떠나야 할 게 있습니다. 우리에겐 그게 뭔지 한 번 살펴보고 깨닫게 되면 버리고 떠나는 결단을 내리시기

6-28-20 하나님의 종, 모세

하나님은 풍요와 잔치로 가득 찬 애굽 궁중에서 모세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외로운 광야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거기서 모세는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스데반은 사도행전 7:30,31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광야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30] 40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가운데 그에게 보이거늘 [31]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귀히 보고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그랬습니다. 40년 동안 궁중에서 생활했었을 때에 모세가 주의 소리를 들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광야에 갔을 때 비로소 주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광야에서 들려오는 것입니다. 결국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는 고독이라는 값을 지불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홀로 경건한 시간을 갖고 있으신지요? 복잡한 세상에 뛰어들기 전에 아침 일찍 고요한 새벽기도의 단을 쌓아 보십시오. 조용히 하루를 앞에 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하나님의 종, 모세는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이루기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가 죽을 때 120세였지만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할”(신 34:7절) 정도로 하나님은 그가 사명을 이루는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셨습니다. 비록 가나안까지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하더라도 그를 향해 가지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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