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6-21 한 해를 보내면서 올리는 기도 (이해인 수녀)
마지막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아쉬운 시간 저 멀리 지나가 버린 기억 차곡차곡 쌓아 든든한 나이테를 만들게 하십시오. 한 해를 보내며 후회가 더 많이 있을테지만 우리는 다가올 시간이 희망으로 있기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십시오.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사 안부를 띄우는 기도를 하게 하십시오. 욕심을 채우려 발버둥쳤던 지나온 시간을 반성하며 잘못을 아는 시간이 너무 늦어 아픔이지만 아직 늦지않았음을 기억케 하십시오. 작은 것에 행복할 줄 아는 우리 가슴마다 웃음 가득하게 하시고 허황된 꿈을 접어 겸허한 우리가 되게 하십시오. 맑은 눈을 가지고 새해에 세운 계획을 헛되게 보내지 않게 하시고 우리 모두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모두가 원하는 그런 복을 가슴마다 가득 차게 하시고 빛나는 눈으로 밝은 세상으로 걷게 하십시오.
12-19-21 성탄절
성탄절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옛 어린 시절에는, 일찌감치 성탄카드를 정성스럽게 만들어 다정한 이들에게 보내고, 형들과 뒷산에 올라가서 소나무를 베어다가 이불 솜뭉치를 더덕더덕 붙여 교회 성탄 트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성탄 이브에는 교회당에 모여 선물교환을 시작으로 레크레이션 게임을 하다가 새벽이 되면, 각 가정에서 주는 과자 선물을 받아 담기 위해 산타클로스 모자를 쓰고, 자루를 어깨에 메 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부르며 밤새 내린 흰 눈을 밟으며 새벽송을 돌곤 했습니다. 아직도 눈앞에 선한 학창시절의 성탄절입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지만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세월의 속성 때문에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며 잠시 추억에 잠겨봅니다. 해마다 성탄절로 지키는 12월 25일은 실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로 추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성경에 정확하게 '그 날'을 기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로마 제
12-12-21 크리스마스 트리
12월이 되면 우리 교회 강단 위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예쁘게 장식이 됩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샤핑몰이나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해놓은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트리의 유래에 대해서 아시는지요? 종교 개혁자인 마틴 루터가 크리스마스 이브 밤 중에 숲속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평소 어둡던 숲이 등불을 켜놓은 듯이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영롱한 달빛이 소복하게 눈이 쌓인 전나무 위에 비쳐서, 주변을 환하게 비춰서 빛의 향연을 벌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본 마틴 루터는 순간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인간은 저 전나무와도 같다. 한 개인은 어둠 속의 초라한 나무와도 같지만 예수님의 빛을 받으면 주변에 아름다운 빛을 비추일 수 있는 존재이다.” 마틴 루터는 이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전나무 하나를 집으로 가져왔고, 전나무에 눈 모양의 솜과 빛을 발하는 리본과 촛불을 장식했습니다.
12-5-21 여리고성
겸손의 다른 이름은 지혜입니다. 왜냐하면 지혜의 골짜기는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지점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남보다 자신을 낮출 때 생기며 지혜로운 사람의 특징입니다. 바다가 바다일 수 있는 이유는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의 모든 물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무능의 결과가 아닙니다. 지혜롭기 때문에 겸손한 것입니다. 이해한다는 영어는 understand인데 아래under와 선다stand는 말의 합성어로 타인의 아래에서 본다는 뜻입니다. 지혜는 자신을 낮추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방법은 많습니다. 특수부대를 먼저 보내 성 안을 교란시킬 수도 있고, 아니면 전면전을 시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순종을 요구했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일곱 째날 일곱 번 도는 전술을 썼습니다. 이스라엘 병 사들은 황당한 명령에 불만과 의심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전쟁에서 승리하
11-28-21 할례
창세기 17장에 처음 등장하는 할례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그 리고 이스라엘의 후손 사이에 상호 지킬 언약의 표시인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또 그 후손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그분의 자녀, 그분의 백성이 될 것”을 보여주는 외적인 증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이후의 모든 유대인 남자는 다 할례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광야에서 40년 연단 받는 동안 이스라엘은 할례의식을 행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태어난 다음 세대들에게 다시 할례를 받으라고 명하십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일도 상황과 시기가 맞아야 합니다. 여호수아 5장의 상황은 가나안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을 치를 때이기 때문에 남자들이 할례를 받는다는 건 자살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할례를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는 것보다, 가나안 정복전쟁을 빨리 수행하는 것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