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4, 2019

Please reload

Recent Posts

오늘 남선교회 헌신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의 헌신의 모습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마가복음 12:30)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사...

헌신 (2/2)

February 3, 2018

1/1
Please reload

Featured Posts

3-17-19 탕자 이야기

March 16, 2019

불교에도 기독교에 있는 ‘탕자 이야기’가 있는데 그 끝이 다릅니다. 아들이 반항하여 집을 떠났다가 나중에 잘못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온 것까지는 같습니다. 하지만 이 아들은 수행으로 자신의 비행을 갚아야 했습니다. 바로 25년 동안 고되게 똥을 치워야 했던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기독교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모습을 보자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고 달려 나옵니다. 그리고 아들을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 반지와 신발을 신겨주고 큰 잔치를 벌여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켜 줍니다.

 

이슬람교에서는 사람이 태어나면 두 천사가 붙는데, 한 천사는 오른쪽 어깨 위에서 그 사람의 선행을 기록하고, 다른 천사는 왼쪽 어깨 위에서 그 사람의 악행을 기록합니다. 심판의 날에 양쪽의 행위를 저울에 답니다. 선행이 악행보다 더 많아야지 낙원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슬람교의 신인 알라가 저울의 수치를 존중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낙원을 절대적으로 보장받는 방법은 둘 뿐인데 하나는 순례 중에 메카에서 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알라를 위한 지하드(성전)에서 죽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은혜라는 개념이 이슬람교에는 없습니다.

 

이처럼 ‘탕자 이야기’에 나오는 과분한 은혜는 세계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인 ‘은혜’는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나 자격으로 결코 얻을 수 없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선물입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은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나 자격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천국도 우리에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크나큰 사랑을 체험한 탕자에게는 가슴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아버지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 그리고 이제 남은 생애를 아버지를 위해서 살겠다는 불타는 헌신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 마음이야말로 돌아온 탕자인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인의 기본자세입니다.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Please reload

Follow Us

I'm busy working on my blog posts. Watch this space!

Please reload

Search By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