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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19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 당하실 때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눅 22:47)가 앞장서 주님께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누가는 유다를 그냥 “열둘 중의 하나”라고 말합니다. 더 이상 제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의 행동을 아는, 배신을 기록하는 자리에는 제자라는 칭호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우린 유다라는 이름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 일찍 야곱의 열두 아들 중 하나로 등장하는 유다는 찬송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유다’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찬송 받을 이의 아들”을 배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도라는 호칭에 걸맞은 삶을 살고 있는지요? 성도의 마음은 선한 일에 감동을 하고, 뭔가 성도를 세우려는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눅 22:47) 예수님께 가까이 온다고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자들이 “무리”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주일마다 선포되는 말씀을 듣고도 변화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적대감을 품고 있었던 사람들이요, 지금도 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사람 사이에서 가장 친밀한 사랑과 존경의 표시인 입맞춤을 배신의 도구로 선택한 유다의 위선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눅 22:48).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게, 사랑스런 것은 사랑스럽게 활용하셔야 합니다. 우리 때문에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듭시다.

내가 걸어왔기 때문에 광야에 좀 더 나은 길이 나고, 내가 지나갔기에 길을 가로막는 가지들이 치워지고, 내가 살았기에 땅위에 꽃 하나라도 더 피어나고, 내가 같이 이웃했기에, 한숨과 눈물이 줄어든다면, 우린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유다라는 이름 아니라도, 열둘이라는 숫자에 들지 못해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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