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19 나사로와 부자

달나라에 직접 갔다 온 우주비행사가 말하는 달과 책으로만 달나라에 관해 읽은 사람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직접 본 사람은 그 말에 사실감이 있습니다. 주님은 하늘나라를 보고 온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를 잘 아시기 때문에 나사로와 부자 이야기를 통해 천국과 지옥을 생생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는 하늘의 실상을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부자는 죽어서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봅니다. 물을 조금 요구하다가 아버지 집의 동생들을 위해 나사로를 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거지 나사로는 그의 이름 속에서 그의 삶의 힌트가 들어있습니다. 나사로라는 뜻은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을 바란다는 뜻입니다. 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괴로운 인생을 살았어도 늘 하나님을 바라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사로는 가난한 자이기에 아브라함의 품에 있습니다. 그냥 가난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가난했기에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돈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품에 있습니다. 그는 살아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았던 가난한 사람입니다. 부자는 나사로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가 지옥에 간 것은 부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고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즉 부자는 고통의 의미를 모르고 호사하면서 살고 이웃을 돌

3-24-19 지혜 있는 청지기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6장 1-13절에는 '지혜 있는 청지기 비유'라고도 하고 '불의한 청지기 비유'라고도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맡겨주신 재물을 어떻게 지혜롭게 사용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우리는 모두 청지기가 됩니다. 주인이 나에게 재물, 건강, 재능, 시간, 사명, 가족, 은혜, 은사, 생명 등 모든 것을 주셨는데 내가 낭비하지 않고 잘 쓰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일수록 기부 문화가 풍성합니다. 베푸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나라가 부요해집니다. 주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20:35)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는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이므로, 우리는 불의한 재물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돈은 매력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자유를 주고 인기와 인정을 받게 하고, 편하게 살게 해 주며,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합니다. 하지만 돈과 인격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돈과 지식도 별개의 문제입니다. 돈으로 인격과 지식을 살 수 없고, 돈으로 구원을 살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돈이 구원과 멀어지는 행동을 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돈으로 어떻게 행해야 하나요? 지혜로운 청지기처럼 재물로 친구를 사귑시다.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쓰고, 주변에 나의 도움이 필요하

3-17-19 탕자 이야기

불교에도 기독교에 있는 ‘탕자 이야기’가 있는데 그 끝이 다릅니다. 아들이 반항하여 집을 떠났다가 나중에 잘못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온 것까지는 같습니다. 하지만 이 아들은 수행으로 자신의 비행을 갚아야 했습니다. 바로 25년 동안 고되게 똥을 치워야 했던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기독교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모습을 보자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고 달려 나옵니다. 그리고 아들을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 반지와 신발을 신겨주고 큰 잔치를 벌여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켜 줍니다. 이슬람교에서는 사람이 태어나면 두 천사가 붙는데, 한 천사는 오른쪽 어깨 위에서 그 사람의 선행을 기록하고, 다른 천사는 왼쪽 어깨 위에서 그 사람의 악행을 기록합니다. 심판의 날에 양쪽의 행위를 저울에 답니다. 선행이 악행보다 더 많아야지 낙원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슬람교의 신인 알라가 저울의 수치를 존중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낙원을 절대적으로 보장받는 방법은 둘 뿐인데 하나는 순례 중에 메카에서 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알라를 위한 지하드(성전)에서 죽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은혜라는 개념이 이슬람교에는 없습니다. 이처럼 ‘탕자 이야기’에 나오는 과분한 은혜는 세계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인 ‘은혜’는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나 자격으로 결코 얻을 수 없는 하나님의 무

3-10-19 사순절

지난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동참하는데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사순절에는 금식을 행하고 말과 행실을 조심합니다. 중세에는 사순절 기간 동안에 결혼식을 금하기도 했고 음주가무를 삼갔습니다. 사순절의 가장 큰 목적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부활절을 뜻 깊게 지키도록 준비하려는 것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 주일을 뺀 40일 동안의 기간을 뜻합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왜 주일을 뺐느냐 하면 기독교에서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축하는 날(feast)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권세를 이기신 축제의 날이 주일이므로 주일은 사순절 기간에 있어도 사순절의 날로 보지 않았습니다. 2019년도 부활주일은 4월21일이니까 주일을 제외하고 40일을 뒤로 계산하게 되면 3월 6일, 지난 수요일이 됩니다. 이 수요일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라고 부르는데 이유는 중세 때 신자들이 이 날에 머리에 죽음을 상징하는 재를 뿌리면서 창세기 3장19절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즘 지키는 재의 수요일엔 머리에 재를 발라주며 “사람은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창 3:19)”라고 말하면 이때 재를 받는 사람은 “아멘”으로 답합니다. 이 예절은 참회의 뜻을 일깨워 주며 참된 회심으로 돌아오기를 가르쳐 주

3-3-19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

오래 전에 스코틀랜드에서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목회하는 두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두 분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먼저 한 목사님이 “사실 저는 지난 3년 동안 사역을 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거듭난 성도는 아직 한 사람밖에 얻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목사님은 “최근에 우리 교회에서 한 주간 동안 부흥회를 가졌습니다. 저는 커다란 기대를 걸고 열심히 집회를 인도했는데, 마지막에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주인으로 영접하고 헌신한 사람은 일어나라고 했더니 딱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두 목사님은 서로 목회 생활의 쓰라린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수년이 지난 후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 목사님이 3년 만에 딱 한 명을 얻었다고 한 그 사람이 로버트 마펫인데, 그는 아프리카 선교의 기초적인 틀을 마련한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목사님이 부흥회를 통해 영접한 단 한 사람, 그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대륙에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불을 지른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딱 한 명이라 할지라도 그 한 사람의 가치가 정말 소중합니다.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며 찾아나서는 사람들의 마음은 항상 주님의 사랑으로 따뜻합니다. 마음이 차갑고 남을 공격하는 사람은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길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마음에 합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

2-24-19 여선교회 헌신

오늘은 여선교회 헌신 예배로 드립니다. 어느 교회든지 여선교회는 교회사역의 중심에 있고, 어머니 같은 사랑으로 섬기는 여선교회 회원들이 있기 때문에 따뜻한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만일 여선교회가 부엌에서 일만 하는 부서라고 생각하면 진정한 여선교회의 정신을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여선교회가 조직된 첫 번째 동기는 선교 때문입니다. 일찍이 남침례교단은 지금으로부터 131년 전인 1888년에 총회에 들어가실 수 없는 사모님들이 모여서 해외에 나가있는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시작으로 미남침례회 여선교회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독립된 단체(www.wmu.com)로서 여성들도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라는 고린도전서 3장 9절에 근거해서 선교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국내외 1만여 명(한인 선교사 약 360가정)의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와 후원뿐 아니라 그들의 사역을 알리고 교육 하는 일을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 까지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남침례교단 파송 선교사님들의 50%이상이 어려서 선교교육을 받은 분들이라고 합니다. 남선교회는 선교를 중심으로 모이는 남자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여선교회는 여자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친목을 도모하고, 여러 가지 사업을 하기도 해야겠지만, 그 모든 것이 선교를 위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연합침례교회의 모든 여선교회원들도 선배들의 정신을

Featured Posts
Recent Posts
Archive
Search By Tags
No tags yet.
Follow Us
  • Facebook Basic Square
  • Twitter Basic Square
  • Google+ Basic Square